김태유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는 독특한 커리어를 가진 분이다. 1951년생으로 올해(2025년 기준) 74세인 그는 공학도로 시작해서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경제학자가 되었다. 참여정부 시절 과학기술정책보좌관으로 행정도 경험한 그는 서울대학교 교수로 돌아와서 남들은 은퇴할 나이에 공학, 경제학, 지정학, 역사학 등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문명사학자'의 길을 개척했다. 어릴 적 꿈이었던 역사학자를 실현한 것이기도 하고, 그가 주장하듯이 인생 이모작을 성공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왕성한 활동으로 인상적인 책들을 쓰고 강연을 남기고 있는데, 특히 유튜브 채널 '언더스탠딩'에서 20회에 걸쳐 인터뷰한 'The Civilization 김태유의 위대한 문명사' 시리즈는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산업, 문화 전반에 대해 융합적인 식견을 보여주는 교과서와도 같다. 그의 강점은 특정 분야의 전문가의 생각이 갇히지 않고 서로 다른 영역들이 연결되어 작동하는 것들을 포착해내는 것에 있는데, 이것은 74세까지 축적해온 지식과 경험의 힘을 느끼게 한다(그를 보면서 나에게 펼쳐질 20년을 잘 축적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글에서 그의 '언더스탠딩' 출연 20화 중에서 그 중 인구, 지역, 세대 문제와 변화에 대한 실천적 제언을 한 제 17화, 18화에 보고 공감했던 내용, 알게 된 것들, 그리고 새롭게 떠오른 질문과 고민에 대해 적어보고자 한다.
[참고] 유튜브 원본 영상
그는 저출산과 고령화, 인구 절벽으로 큰 위기에 봉착한 한국의 위기의 원인을 인구과잉, 과당경쟁, 저성장 세가지 원인을 꼽는다. 하지만 더 크게는 전세계적으로 인구 감소의 흐름이 이어지는 이유도 살펴본다. 유아 사망이 많았던 농경 사회에서는 많은 아이를 낳았지만 인구 증가세가 크지 않았다. 그러다가 산업 사회가 되어 생산과 의료 등이 크게 발달하며 사망률이 떨어지면서 전세계적으로 급격한 인구 증가가 일어났다. 그러나 산업 사회에서는 전지구적인 자원 고갈, 환경 파괴, 기후 위기가 심화되었고, 그런 면에서 인구가 다시 적정 인구로 줄어드는 과정은 마치 비만인 사람이 건강해지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네덜란드, 덴마크 같은 선진국들은 인구가 1700만명, 500만명대로 많지 않다. 대한민국의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든 상태가 적정 인구일 수도 있다. 문제는 줄어든 인구 수 자체가 아니라, 인구가 줄어드는 변화의 가파르기다. 급격한 변화의 시기에는 항상 큰 혼란과 고통이 따르기 때문이다.
혹자는 한국의 현재의 출산율이라면 대한민국은 머지 않아 소멸할 것이라고 우려하지만, 김태유 교수는 그렇게 보지는 않는다. 인구가 고령자가 많고 젊은층이 적은 역피라미드 형태로 감소한 후에 안정기에 접어 들면, 직사각형 모양으로 유지되는 때가 올 거라고 본다. 현재의 한국의 인구 절벽의 원인이 해소되어 갈 때 출산율은 다시 올라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도달하기 까지 '죽음의 계곡'의 시기에 어떻게 변화를 잘 관리해나갈 것인가가 중요하다. 다이어트를 하다가 영양실조에 걸려서 죽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의 이런 관점은 평상시에 내가 생각해왔던 것과 일치한다. 기존의 관성대로는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은 상황이 되었기 때에 우리는 '변화 관리 Change Management'와 '변화 디자인 Change Design'이 필요하다. 이러한 변화는 단선적이지 않기 때문에 김태유 교수와 같이 융합적인 사고를 통한 변화 디자인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무척 반갑고 그의 인사이트가 더욱 궁금해졌다.
그는 아이를 낳고 낳지 않는 것은 문화적인 부분이 크다고 말한다. 출산율을 높이려는 정부의 지원 정책들은 그동안 효과적이지 않았다. 수도권에 청년들을 위해서 아파트를 더 공급하려고 하고 지방 정부들은 출산 장려 지원금을 늘려보지만, 그럴 수록 청년들은 수도권에서 살며 집을 마련하지 못한 자신들은 아이를 낳고 키울 자격이 (아직) 안되었다고 느끼는 심리가 커지는 역효과도 나타난다. 수도권에 모든 산업, 문화 인프라가 집중된 상황에서 이러한 인식은 더욱 확산된다. 더욱이 청년들은 서울에서 은퇴한 고령자들과 제한된 주거지를 놓고 경쟁해야 한다. 지방에 좋은 일자리가 있거나 은퇴한 고령자가 서울의 집을 팔거나 세를 주고 지방 도시로 가게 된다면 이런 문제는 완화될 것이다. 하지만, 의료, 문화 등에 있어서 은퇴한 고령자들 다수가 이주하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지방 도시를 우리는 (아직) 만들지 못했다.
그는 매력적인 지방도시를 만드는 방법 중 하나로 부울경(부산, 울산, 경남) 지역에 북극 항로 아시아 허브 항구 도시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안한다. 중동 분쟁의 위기와 기후 변화의 시기를 도약의 기회로 삼자는 전략이다.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는 유럽과 아시아의 물류 혁명을 가져왔지만 중동 분쟁은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 한편 북극의 빙하가 녹으면서 한반도를 경유해서 더 빠른 경로로 유럽으로 항로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기후 온난화 자체는 안타까운 일이고 해결해가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미 변화한 것에 적응하는 노력 역시 필요하다). 정치 경제적으로 중국, 일본이 러시아와 영토 분쟁이 있는 반면 한국에는 러시아가 우호적이라는 것이 기회다. 이러한 큰 모멘텀을 만들어서 서울과 다른 세계적인 도시가 다른 지역에 만들어질 수 있다면 서울 외에 선택할 수 있는 매력적인 거주지가 분산되면서 인구과잉, 과당경쟁, 저성장의 문제를 해결해갈 수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서의 해결책은, 가파른 인구 감소시기에 사회 안전망이 무너지는 고통을 완화시키고 연착륙하기 위해서 '생산가능인구'가 급격히 줄지 않도록 하는 방안이다. 인구가 감소하는 시기에 사회적인 고통은 '부양비'로 계산할 수 있다. 생산가능인구가 비생산인구를 부양하는 비율이다. 우리가 개발도상국 시절에는 생산가능인구 3명이 고령자 1명을 부양했다면, 인구 감소 시기에는 생산가능인구 1명이 고령자 3명을 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니 청년들의 고통은 커지고, 고령자는 빈곤율이 높아지게 된다.
이 문제를 김태유 교수는 55세 이상 장년층이 생산가능 인구로 오는 이모작 사회를 제안한다. 실제로 74세인 그가 살아온 실천으로 입증하고 있듯이 말이다. 상대적으로 청년층은 유동 지능(Fluid Intelligence)이 높고, 장년층은 결정 지능(Crystallized Intelligence)이 높다. 결정 지능은 학습이나 경험과 관련이 있으며, 유동 지능은 추론, 창의성과 관련이 있다. 그는 청년층과 장년층의 사회적 분업을 제안한다. 4차산업혁명을 성공적으로 실현해내면 청년층의 생산성이 올라간다. 일례로 로봇, AI 등을 활용해서 몇배 이상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장년층은 소득이 많지는 않더라도 오랜 경험과 학습으로 할 수 있는 일들로 이모작을 해서 급격한 인구 감소 시기에 노인부양비를 낮추어 '죽음의 계곡'의 시기를 넘자는 것이다.
나의 소감, 그리고 풀리지 않는 문제들
1951년생인 김태유 교수는 1971년생인 나와 정확히 20년 나이 차이가 난다. 앞으로의 20년을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는 나에게 그는 많은 영감과 에너지를 준다. 무엇보다 그가 살아온 삶, 축적의 시간으로 증명하고 있고, 단순히 문제에 대한 분석에 그치지 않고 74세의 나이에 스스로 실천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그의 주장은 상당히 힘 있게 들린다.
특히 '문명사학자'라고 스스로 칭하듯이, 농경사회, 산업사회를 거쳐 또다른 사회로 가는 시기의 거시적인 변화의 과정을 볼 뿐 아니라,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서 세대간, 지역간 문제가 어떤 지점에서 충돌하고 사람들이 왜 지금과 같이 행동하는지에 대해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시니어로서 그의 경험과 지식, 즉 결정 지식이 빛을 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결정 지식'이라고만 할 수 없는 것이 그는 여러 영역과 관점을 창의적으로 융합하고 분석해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데 이것은 '유동 지식'이다. 즉, 그는 두 유형의 지식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경험이 아직 풍부하지 않은 청년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가 제시한 솔루션인 생산가능인구와 생산성을 높이는 것, 수도권 과밀과 과당경쟁을 해소하기 위해 지방도시를 글로벌한 도시로 만드려는 정치경제적 기회를 찾는 전략 모색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이 영상의 말미에 사회자들이 몇가지 질문을 제기한 것과 같이, 몇 가지 완전히 풀리지 않는 실천적 문제들 역시 남는다.
첫째,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김태유 교수처럼 70대까지도 생산가능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인가이다. 여기서 생산 가능한 인구라는 것은 김태유 교수의 다른 인터뷰 영상에서 말하는 것처럼 부동산 불로 소득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며, 크든 작든 실질적인 생산을 하는 것이다.
둘째, 4차산업혁명이 잘 되어 청년들의 일자리가 지속적으로 늘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다. AI 혁명은 오히려 기존의 지식근로자들의 일자리가 정량적으로 줄어드는 현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역량 있는 청년들 안에서도 능력에 따라 빈익빈부익부가 더 커져가는 것이다.
그는 이 질문에 대해서, '언제나 역사적으로 산업보다 인재가 우선했다'라는 이야기로 답변했다. 즉, 4차산업혁명에 맞는 인재들이 제대로 커나간다면 산업이 만들어가질 것이라는 것이다. 나는 인재가 없이는 산업이 생기고 성장하기 어렵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그 변화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어떤 단계로 일어날 수 있을지 솔직히 막막하기도 하다.
하지만 긍정적인 변화를 만드는 실천이 필요한 때다. 어쩌면 이미 그런 인재들은 우리 사회에 나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기존의 인재상과는 다를 것이다. 우리가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그들이 더욱 성장하고, 또 다른 후배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데 우리의 노력이 부족함이 있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또한, AI 혁명으로 인해 누군가는 생산성이 수십배 이상 높아지고 누군가는 실직자가 되는 상황에서 우리가 어떤 사회적 합의를 봐야 할 것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김태유 교수의 인터뷰에서 배울 것은 하나의 정해진 하나의 정답이 아닐 것이다. 정답을 제시하기 어려운 급격한 변화의 시기에 그와 같이 폭넓고 깊게 생각하고 그 인사이트를 나누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더 많아진다면, 그 사람들이 서로 질 높은 토론을 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 다가온 '죽음의 계곡'을 넘어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는 희망이 더 커질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인구가 줄어든 상태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은 축복일 수 있다는 것, 그 과정에서 거치는 사회의 고통의 시기에 우리가 어떻게 방향을 잘 세우고 지혜를 모아 갈 수 있는가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