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건너뛰기

지역 변화 관리와 상권 창출 거버넌스

- 전주 웨딩거리를 중심으로 -

들어가며: 원도심의 위기와 기회

지방도시의 원도심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지역의 인재, 지식, 문물, 자본이 모여들고 교류하며 융합하여 새로운 것이 탄생하는 허브였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신도심 개발과 서울 집중이 가속화되면서 원도심은 교류의 허브라는 핵심 기능을 상실하고 쇠퇴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인구 감소, 청년 이탈과 고령화, 산업과 상권 쇠퇴가 본격화되었고, 2020년부터는 전국의 총인구마저 감소세로 돌아서면서 지방도시 원도심의 빈 건물들과 고령화는 우리 사회의 암울한 미래를 보여주는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기회도 열리고 있다. 예를 들면, 원도심에는 축적된 문화역사자원이 있고 KTX역 접근성이 좋다. 선진국에서 태어나 자란 청년 세대들이 오래된 것들에 대해 기성세대보다 더 자유롭게 향유하며 이를 통해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기도 한다. 최근 K-콘텐츠의 전 세계적 유행까지 더해져서 지방도시의 원도심은 세대와 지역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이렇게 찬란한 낙관적인 미래를 그리면서 희망을 품을 수 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지역 변화 관리(Regional Change Management)다.


지역 변화 관리: 이론적 프레임워크

변화 관리의 5단계 방법론

변화 관리는 경영학에서 나온 조직의 성장 방법론으로, 다음 5단계로 구성된다:

  1. 미래상 공유: 모든 구성원이 함께 미래상을 그리는 것에서 시작
  2. 현실 진단: 미래상과 현재 상황의 차이를 명확히 확인
  3. 변화 촉진자 발굴: 각 영역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고 확산할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 발견
  4. 빠른 성공 창출: 변화 촉진자들을 연결하여 함께 빠른 성공(Quick Win) 달성
  5. 지속적 확산: 작은 성공들의 의미를 확인하고 공유하며, 변화 촉진자들의 참여와 성장을 통해 변화를 지속적으로 확산

제주 창업생태계: 지역 변화 관리로 10년, 검증된 성공 사례

필자는 2015년부터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센터장으로서 7년간 경영 조직의 변화관리 방법론을 지역 변화 관리에 적용하며 실천했다. 그 결과 가장 창업생태계가 척박하다고 평가받았던 제주가 10년을 경과하며 전국 지방도시 중 가장 완성도 높은 창업생태계로 탈바꿈했다. 이는 지역 변화 관리 방법론의 실효성을 입증하는 사례다. 이 내용은 2023년 출간한 <커뮤니티 자본론 - 나의 제주에서 7년간 창업생태계 실천커뮤니티를 만들어간 이야기>에 담아 두었다.

무한게임으로서의 지역 변화

지역 변화 관리는 무한게임(Infinite Game)이다. 정해진 룰과 참여자, 명확한 시작과 끝이 있는 유한게임과 달리, 무한게임은 '게임 자체를 지속하는 것이 목적'이며 '게임이 지속될수록 참여자가 계속 바뀌고 늘어나는 특징'이 있다.

지역 원도심 상권 창출 역시 무한게임이다. 개별 사업들은 유한게임으로 보이지만, 궁극적 목적인 상권 창출은 본질적으로 무한게임이다. 상권이 생명력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활성화되며, 다음 시대와 다음 세대로 이어달리기를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전주 원도심 사례: 실천과 적용

연결의 시작: 관계 인구가 되고 나서 연결, 융합, 창조의 가교까지

2022년 10월, 지리산포럼에서 만난 즐거운도시연구소 정수경 대표와의 만남이 전주와의 인연의 시작이었다. 정수경 대표가 전주 원도심으로 초대해 환대해주면서 전주 원도심의 관계인구가 되어갔다. 같은 해  전북 도청 요청으로 필자가 소속된 크립톤이 전북 지사를 설립하게 되었는데, 원도심이 지역창업생태계 거점으로 맞다는 크립톤의 철학에 따라 신도심이 아닌 원도심 전라감영 앞에 자리를 잡았다.

전주 원도심에 자주 방문하게 된 나는 2023년에는 무명씨네협동조합 이하늘 대표와 연결되어 정수경 대표가 만든 커뮤니티서점 경원동샵에 함께 입점했다. 걸어서 10분 거리였지만 서로 전문 영역이 달랐던 두 대표를 연결한 것은 외지인인 나였다. 이렇게 나는 전주 원도심에서 각각의 영역에서 활동하던 청년 커뮤니티리더들 간의 협업 가교 역할을 시작했다. 이렇게 나는 즐거운도시연구소의 관계인구로부터 시작해서 더 나아가 연결, 융합과 창조를 실행하는 주체가 되어가고 있었다.

글로컬상권창출 사업: 창조 커뮤니티의 생성

그러다가 2024년에 중기부 글로컬상권창출 사업 참여를 계기로 본격적인 변화 관리가 시작되었다. 5월 1일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일, 무명씨네협동조합에서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을 모아 전주 글로컬상권창출팀이 탄생했다.

이를 통해 만들려고 하는 동네의 모습은  '우연한 연결을 통해 운좋은 기회가 창출되는 동네'를 만드는 것이다. 즉,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더 나은 사업 기회와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전반기 사업 중 핵심 활동들 중 몇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매월 3째주 금요일 창업자 커피챗: 동네 카페를 순회하며 창업자들을 연결하고 공간을 연결
  • 커뮤니티 시네마: 워커비 등 다양한 소상공인 공간에서 상영회 개최
  • 건물주-창업자 해커톤: 다양한 주체 간 협업의 기회 창출
  • 장인학교: 전통 생활장인과 예비창업자 청년들의 만남을 통한 브랜딩 재해석
  • 9박 10일 전주 원도심 체류 프로그램: 기존 당일치기 여행을 넘어서 전주 원도심의 관계인구가 되어가고 지역 창조성의 일원이 되어가는 체험


웨딩거리와 셀레브레it: 브랜딩 전략

웨딩거리의 현재와 가능성

웨딩거리는 과거 다양한 산업이 공존했으나 웨딩산업으로 특성화된 후 한동안 전성기를 구가하다가 급격히 쇠퇴해 공실이 많은 상황이다. 하지만 오랜 전통의 노포들이 몇몇이 남아 있고, 평화와평화, 금성당, 가노, 노매딕 브루어링 같은 창의적 소상공인들이 새롭게 생겨나고 있는 전환기의 공간이기도 하다. 쇠퇴하고 있지만, 지속가능성을 만들기 위해서는 전환기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매우 중요한 골든타임인 것이다.

셀레브레it 브랜딩

이러한 전환기적 특성을 바탕으로 '셀레브레it(Celebrate it)'이라는 동네 브랜딩을 도출했다. 이는 산업의 다양성을 되찾고 전통과 현대, 다양한 세대, 지역민과 관계인구가 연결되어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을 축하해줄 수 있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동네에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제품, 서비스들이 이 브랜딩과 연결고리를 가질 때 시너지가 날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거버넌스 구축

자율상권구역을 통한 상향식 접근

기존 상권활성화 사업의 '상권활성화 구역' 방식의 한계는 지자체 주도로 하향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사업 종료 후 민간 거버넌스가 부재해서 지속되지 못한다는 것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22년 도입된  '자율상권구역' 방식은 민간주도로 민관협력을 만들어내는 상향식 방법이다

상향식 접근을 할 때, 구체적인 법인의 형태는 정해진 정답이 없다. 실제로 미국, 유럽, 일본 등의 지역 매니지먼트 회사도 지역마다 저마다 다양한 방식의 성공사례들이 있다. 전주 원도심에서는 가장 맞는 방식이 무엇일지 즐거운도시연구소와 함께 올해 하반기 동네 상권 거버넌스 연구를 통해 구체화해나가는 중이다. 현재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사단법인으로 상위 상권관리기구를 만들되, 다양한 전문성을 살리는 특성화된 상권관리회사가 협업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한 방식을 구상중이다. 아직은 정해진 것이 없고, 이것이 바로 전주시 예산으로 진행하는 글로컬상권창출 사업 후반부 사업의 핵심 과제다.

  • 자율상권조합: 지역 상인들의 자치 조직
  • 상권관리기구: 공공사업 수행을 위한 비영리 조직 (사단법인)
  • 상권관리회사: 공공사업은 사단법인이 진행하되, 다양한 영역의 영리, 비영리 상권관리회사가 생겨날 수 있을 수 있는 구조.

참고 자료:

구분 상권활성화구역 자율상권구역
법적 근거 전통시장특별법 지역상권상생법
주체 지자체(공공) 주도 상인·임대인·주민 자율 주도
주요 목표 기반시설·환경 개선 중심 임대료 안정, 상생, 지속가능성
재원 국비+지방비 국비+지방비+민간 협력
유형 전통시장형·일반상권형·문화관광형 단일(자율협약 기반)
리스크 상인 참여 저조 협약 파기 시 지원 중단

* 참고로, 통영시 강구안 상권활성화 5년 사업, 대전 중구의 상권활성화 5년 사업은 지자체 주도의 하향식의 '상권활성화 구역' 방식이다(글로컬상권창출 사업과는 별도로 지자체 주도로 진행됨).
* 전주 원도심과 유사하게 수원의 행궁동은 글로컬상권창출 사업을 통해 사단법인 행궁동을 만들고 자율상권구역을 준비하고 있다.
* 제주시 원도심은 '자율상권구역' 방식의 상권활성화 사업의 대표적 사례 중 하나다. 필자의 책 <커뮤니티 자본론>에 중앙로 사거리에 지상과 지하 상점가 상인회간 갈등으로 37년 동안 횡단보도가 생기지 못하다가 2021년에 협업을 통해 만들게 된 사례가 나오는데, 이 협업을 통해 소통과 협력을 하게 된 상인회들이 로컬크리에이터 일로와와 함께 협업해서 동네상권발전소 사업을 진행한 후 자율상권조합을 만들어 추진한 것이다.


성공 요인과 향후 과제

성공을 위해 갖춘 요건
  • 강력한 지역 리더십: 즐거운도시연구소 같은 뛰어난 도시연구소의 존재는 전주 원도심의 엄청난 자산이다.
  • 세대 간 소통: 전주 원도심의 청년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기성 세대 상인들과 소통해온 기반이 있다. 이들은 변화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다.
  • 내부와 외부의 연결: 내부 역량만으로는 한계가 있기에 외부의 전문 역량을 가진 파트너들과의 결합이 필요하다. 관계인구를 형성을 통해 가능해지고 있다.
향후 과제
  • 지속가능성 확보: 무한게임의 특성상 지속적인 참여자 유입과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세대교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 경제적 자립도: 상권창출 거버넌스가 공공사업 의존에서 벗어나 자체적 수익 창출 구조 확립이 과제다. 일본, 유럽, 미국 등에는 PPP(Public Private Partnership)과 BID(Business Improvement District)가 활발한 반면 한국은 아직 초기 단계다. 비영리 법인은 고향사랑기부제, 영리 법인은 배당 중심의 투자 문화와 제도 등 다양한 해법을 찾아가려고 한다. 이 부분은 별도의 글로 따로 쓰도록 하겠다.
  • 갈등 관리: 변화를 향해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므로 갈등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을 수직적인 하향식으로 갈등을 봉합하는 것은 과거의 방식이다. 상향식 커뮤니티 형성에서 중요한 것은 함께 설레는 비전을 만드는 과정이며, 서로의 관점의 차이를 인정하고 갈등을 넘어서 서로를 이해하고 같은 목표로 갈 수 있도록 하는 조정과 협업 형성 능력이다.


다양성, 개방성, 연결성의 생태계로의 전환의 과정

지역 변화 관리와 상권 창출 거버넌스 구축은 무한게임의 과정이다. 참여자가 정해져 있지 않고 지속가능성 자체가 목적이 된다. 장기적으로 보면 시간이 흘러 외지인이 지역민이 되어 구분이 경계가 사라지기도 하고, 기성세대가 은퇴하며 청년 세대가 중년이 되고, 새로운 세대가 태어나 자라나며, 또 다른 사람들이 원도심으로 유입되어 자리 잡을 것이다. 어떤 순간이든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사업 기간만이 아니라 10년, 20년 뒤의 지속가능성을 보고 현재에 필요한 일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닫혀 있던 생태계가 열린 생태계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상권 창출이며 지속가능한 활력이 아닐까.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도시가 생명력을 회복하는 길이 아닐까. 즉, 각각의 상인의 활동들이 동네의 브랜딩으로 서로 힘을 모아서 다양성, 개방성, 연결성을 가진 매력과 지속가능성의 생태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전주 원도심의 실험은 이제 시작 단계다. 하지만 이미 보여준 가능성과 구축하고 있는 거버넌스는 다른 지방 원도심들에게도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모든 지역이 같은 해법을 가질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각 지역의 특성에 맞는 변화 촉진자들을 발굴하고, 다양한 이들이 함께 꿈꿀 수 있는 미래상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앞으로 전주 원도심의 변화를 기대하고 관심을 가져주시길 기대한다. 지역 변화관리와 상권 창출 거버넌스를 만들어가는 전주 원도심의 실험은 앞으로도 온오프라인에서 계속 다양한 방식으로 공유할 예정이다. 

전정환 2025년 9월 25일
SHARE
ARCHIVE
로컬 크리에이터 생태계: 오해와 편견을 넘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