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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세대, 산업의 변화디자인

농업지식채널 '짓다'- 남재작 박사, 최준영 박사, 강호진 농무관, 이주량 박사의 대담을 보고
능동적으로 만들어낸 전환은 지속가능성을 만든다

변화는 언제나 일어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렇다. 시대의 새로운 문제를 정의하고 여러 주체들이 함께 큰 변화를 디자인하고 실행하는 것을 우리는 '전환'이라고 부른다. 전환을 능동적으로 해 내지 못하면 변화의 흐름에서 도태되거나 외부에 의해 강제로 변화를 맞이하게 될 수 있다. 강제로 맞이한 큰 변화는 큰 고통과 피해를 낳고, 그 후유증은 현 세대만이 아니라 다음 세대까지 남게 된다. 반대로 주체적으로 만든 변화는 지속가능한 번영을 낳는다.

우리에게는 전환의 실패 사례들이 있다. 19세기말 구한말이 그랬다. 근대화를 이루려는 내재적 노력은 실패했고, 결국 20세기초 일제강점으로 강제로 근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근대화는 이루었지만, 그 후유증은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1997년의 IMF 경제위기 역시 그랬다. 1960년대 개발도상국에서 시작해서 정부와 대기업이 경제적 성장을 이루어내기는 했지만, 투명한 경제시스템을 만들고 정경유착을 끊어내는 일을 하지 못하면서 맞이한 경제위기로 많은 국민들이 고통을 받아야 했다. 결국, 우리는 근대화도, 세계화도 이루어낸 대한민국에 살고 있지만, 주체적으로 늦지 않게 전환을 이루어냈다면 전환의 결실을 얻으면서 동시에 고통과 후유증도 훨씬 적었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는 많은 영역에서 압축 성장 시스템으로부터 다시 또 다른 전환을 이루어내어야 한다. 인구 절벽, 지역 쇠퇴, 기후 변화 등 새로운 위기가 진행중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환은 미래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때는 기성 세대와 청년 세대 사이의 관점의 차이, 각 영역에 있어서 관성으로 인해서 전환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가 상당히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지체할 수는 없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우리는 반드시 전환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남재작 박사, 최준영 박사가 운영하는 유트브 채널 <농업지식채널 '짓다'>의 콘텐츠는 매우 소중한 콘텐츠다. 이 채널은 '농업의 미래와 전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여기서 다뤄지는 우리 사회의 '변화디자인' 이슈는 농업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모든 근간에 대한 매우 중요하고 심도 있는 인사이트를 담고 있다. 즉, 농업 뿐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전체와 다른 산업까지 확장성이 있는 이야기다. 70년전 시작된 시스템으로부터 가장 변화가 적었던 농업에 대해 '전환 지체'의 원인과 문제를 다각도로 살펴보고 '변화디자인'을 모색하는 것은, 세대, 지역, 산업 전체에 대한 융합적 통찰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많은 콘텐츠들이 훌륭하지만, 이 글에서는 두 콘텐츠를 중심으로 내가 얻은 인사이트를 적어보고자 한다. 

1.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의 이주량 박사는 과학기술과 농업 사이의 정책을 연구하고 있으며 <당신이 모르는 진짜 농업 경제 이야기>의 저자다. 내가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센터장이었던 2021년에 J-Connect Day에 남재작 박사와 함께 초대하여 발표와 패널토론을 함께 한 인연이 있는 분이다. 내가 제주의 창업생태계를 지역의 변화관리(Change Management)를 하고 있으며, 노나카 이쿠지로의 지식 창조 루틴 SECI 모델을 적용하고 있다고 할 때, 우리나라에 지역에 실제 적용하고 있는 사례가 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보이며 인정과 격려를 해 주었던 기억이 난다. 

* SECI는 사회화(Socialization), 표출화(Externalization), 조합화(Combination), 내재화(Internalization) 과정을 통해 암묵지(tacit knowledge)와 형식지(explicit knowledge)를 순환하며 지식을 창출하고 발전시키는 것을 뜻한다.

이주량 박사는 현재 한국 농업의 구조적 문제가 무엇이며, '전환 지체'가 실제로 어떻게 발생하고 있는지를 말한다.


2. 또 하나의 영상은 주한 네덜란드 대사관의 강호진 농무관의 대담이다. 강농무관은 네덜란드가 1900년대초반부터 농업의 전환을 어떻게 성공해냈는지를 그 비결에 대해 이야기하며, 한국이 전환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제언한다. 농업지식채널 '짓다'에는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등장해서 인사이트를 나누는데 연구기관에서는 할 수 있는 중요한 지식창출과 공유의 채널이 되고 있다.


이 콘텐츠들은 각각 전체 영상을 보기를 권한다. 이 글에서는 '짓다'의 영상 콘텐츠를 통해 얻은 지식과 인사이트를 정리하고 나누어보고자 한다.

서로 다른 세대들의 시대적 과제는 다르다

1949년 6월 이승만 정부는 <농지개혁법>을 제정을 단행하고 1950년~52년에 걸쳐 시행한다. 당시에는 자영농은 많지 않고 농지를 보유한 대지주의 땅에서 소작농들이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농지개혁으로 대지주는 몰락하고 자영농이 등장하게 된다. 정부는 농지의 1인당 소유 상한선(9,000평)을 두어 그 이상의 토지는 지주에게 상당히 불리한 조건으로 (현금이 아닌 농지 증권으로) 정부가 강제 매입해서 실제 농사를 짓는 자영농들에게는 파격적인 조건(장기 분할 상환)으로 분배한 것이다. 남북한 대립과 전쟁의 와중에 정부가 이 정책을 추진한 것은 토지의 무상몰수, 무상분배를 하는 공산주의의 정책으로부터 다수 국민인 농민의 민심을 달래기 위한 것이었다. 의도는 국가 안보를 위한 것이었지만, 그 결과 소작농들이 소규모 자영농(소농)이 되면서 농민의 소득이 증가했고, 이들의 자녀들이 도시로 진출하면서 한국의 산업화와 경제성장의 주역이 되었음을 생각할 때 매우 성공적인 '전환'이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흐름을 돌아볼 때, 산업화의 주역으로 도시에 와서 중산층이 된 세대가 부모 세대의 다수를 차지하는 소규모 자영농(소농)에 대해서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들의 자녀 세대인 도시에서 태어나서 자라난 대다수의 청년들에게 농촌과 농업은 다른 의미를 가질 것이다. '전환 지체'가 일어나는 상당수의 이유는 청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기성 세대의 정신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지금 다음 세대를 위한 전환의 지체를 겪고 있다. 1950년대의 한국은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시대였고 저개발 국가였지만, 2020년대의 우리는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70여년 동안의 농업 정책은 계속 소규모 자영농(소농)들이 지속적으로 늘어가는 구조로 펼쳐졌다. 그러나 이제는 지금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는데도 그 정책이 유효한 것일까? 농업채널 '짓다'에서는 지속적으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농업경영체는 180만개, 정부의 보조금인 소농직불제를 수령하는 경영체가 135만개라고 한다. 70년 사이에 지역도 변화하고 세대도 바뀌었는데, 소농이 늘어가도록 펼쳤던 1950년대의 정책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시대가 변화하고 있다. 고령자인 농민들은 은퇴를 하고 싶지만 그에 대한 마땅한 퇴로가 없다. 도시에서 살아온 청년들에게 소농이 되는 것은 매력적인 대안이 아니다. 인구 절벽은 기정 사실이고 이대로 가면 강제로 농촌 인구는 급격히 줄어들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생산을 하는 농지는 줄어들 것이다. 한국이 농업을 포기하거나 대기업들이 농업에 진출해서 독점하게 될 수도 있다. 이것은 위기를 방치한 후에 겪게 되는 '강제적 전환'이다.

이에 대한 대안은 이미 네덜란드가 세계에 보여줬다. 19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네덜란드도 소농들이 중심이었지만 청년인구의 도시 이동이 지속되자, 장기적인 비전하여 정부, 민간, 연구 3자가 지속적인 협업을 해서 농업의 전환을 이루어내었다. 네덜란드의 농지 개혁은 1950년 이승만 정부의 농지 개혁과 반대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즉, 소농들의 농지를 정부가 사서 대규모 농지로 만들어서 농업의 산업화를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소규모 농지를 보유하고 있으면서 고령자 농민들은 은퇴하고 싶어도 은퇴가 어렵다는 것에 착안해서, 이들의 농지를 사면서 은퇴 연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이렇게 확보한 농지들은 대규모 농지로 청년들에게 좋은 조건에 매매되어 그들이 네덜란드 농업을 성공시키는 주역이 되도록 했다.

네덜란드의 농업의 규모화는 가족 자영농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대기업과 자본이 주도한 미국의 농업의 규모화와 다르다. 한편 영국은 네덜란드와 같은 전환을 적시에 하지 못함으로써 농업 전체가 쇠퇴하게 되었다. 한국은 어느 길로 갈 것인가? 지금이 우리가 한국 농업의 미래를 설계하고 구현할 수 있는 마지막 골든 타임이다.

신뢰를 통한 다자간 협력이 성공적인 변화디자인의 열쇠다

우리나라가 압축 성장을 했던 방식은 더 이상 이 전환에 유효하지 않다. 네덜란드의 Triple Helix Model처럼 다양한 주체들의 같은 철학과 중장기 비전을 가지고 서로의 전문성을 존중하며 시너지를 창출하는 것이 성공적인 전환의 열쇠다. 정부, 민간, 연구 3자가 이렇게 시너지를 내어서 전환을 위한 세대간 협력을 디자인해야 한다. 기성 세대들에게는 은퇴 이후의 생계의 불안감을 해결해줄 수 있는 퇴로를 마련해주고, 새로운 미래 세대들에게는 기회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앞서서 김태유 교수의 아웃스탠딩 인터뷰 영상에 대해 나는 '인구 절벽 시대의 변화디자인'이라는 글을 썼다. 그가 이야기하듯이 인구 감소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인구가 감소 하는 시기의 변화디자인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그 감소의 급격한 기울기 때문에 발생하는 세수 부족 등 여러 경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인구 감소 시기는 그동안 지체되어 왔던 전환을 이루어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할 것이다.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공통된 철학과 비전을 가지고 협력하여 제대로 된 '변화디자인'과 '변화관리'를 해낼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그것은 '짓다'의 영상에서 이야기하듯이, 서로간의 신뢰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내가 제주에서 7년간의 창업생태계, 커뮤니티로 변화디자인과 변화관리를 한 경험과 배움을 담은 <커뮤니티 자본론>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과도 일맥 상통하다는 생각이 든다.


전정환 2025년 7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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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절벽 시대의 변화디자인
김태유 교수의 '언더스탠딩' 인터뷰를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