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로컬 크리에이터 생태계가 주목받기 시작한 지는 불과 최근 5-6년이다. 나는 10년전부터 제주에서 8년간 살면서, 그리고 그 이후 다른 지역들을 다니면서 각 지역에서 고군분투하는 진정성 있는 창업가들을 만나왔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이 생태계를 둘러싼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지금, 성급한 평가와 편견 사이에서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현실을 제대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로컬 크리에이터 생태계의 형성 과정
민간이 앞서간 시작 (2019년 이전)
로컬 크리에이터 현상은 정부 정책보다 앞서 민간에서 자생적으로 시작되었다. 제주의 재주상회, 해녀의부엌, 카카오패밀리, 전주의 한복남, 목포의 공장공장, 강릉의 더웨이브컴퍼니, 서울의 어반플레이 같은 기업들이 개척자로 등장했고, 2019년 성수동에서 열린 제1회 로컬 크리에이터 페스타(필자는 조직위원장이었다)는 이러한 역동적인 움직임을 세상에 알린 기점이 된 행사였다.
정부 정책의 뒤따른 체계화 (2020년~현재)
정부의 지원과 육성은 그 다음이었다. 2020년부터 중기부(박영선 장관)가 '로컬크리에이터'를 정책 용어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다음과 같은 사업들이 연이어 생겨났다.
- 2020년: 로컬크리에이터 지원사업 시작
- 2022년: 강한소상공인 사업 신설
- 2023년: 로컬브랜드 창출 사업 및 민간투자매칭융자(LIPS) 제도 도입
투자 생태계의 더딘 변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투자사들에게 로컬 브랜드 기업은 투자 대상에 오르지 않았다. 1997년 코스닥 탄생 이후 기술 벤처의 IPO와 모태펀드 중심으로 정렬되어 있는 우리나라 투자 생태계의 획일성 때문이다.
크립톤이 재주상회(2019년), 카카오패밀리(2021년), 제로포인트트레일(2021년) 등에 투자한 경우처럼 몇몇 투자사들이 로컬 기업에 투자하기도 했지만 아직 큰 흐름을 만들어냈다고 볼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 2023년 정부가 투자사들의 로컬 투자를 촉진하는 여러 정책을 내면서 많은 투자사들이 유입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초기 단계다.
로컬 크리에이터의 세 가지 유형: 하나로 보면 안 되는 이유
현재 '로컬 크리에이터'라는 하나의 범주에 묶여 있지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목적과 성격을 가진 세 가지 유형이 존재한다. 이를 구분하지 않고 평가하면 생태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1. 창의적 소상공인: 자기 표현을 추구하는 창업자들
- 누구인가: 물질적 가치만이 아닌 자신만의 창의적 표현을 추구하는 소상공인
- 목표: 지속가능한 수익 창출과 지역 내 청년들이 원하는 창의적 일자리 창출
- 사례: 전주 원도심의 카페 평화와평화, 수공예샵 바늘소녀공작소
- 의미: 개발도상국 시대와 다른 선진국 시대 청년 세대의 가치 추구
2. 로컬 스타트업: 지역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 누구인가: 지역 자원 기반으로 급속한 성장(J커브)을 추구하는 기업
- 목표: 로컬에서 시작해 전국 프랜차이즈나 온라인 유통을 통한 스케일업
- 사례:
- 강릉 테라로사 (전국구 프랜차이즈로 성장)
- 영도 모모스커피 (오프라인 매장 + 온라인 스케일업)
- 동해 동해형씨, 정읍/고창 반석산업 (해외 유통 개척)
3. 로컬브랜딩 상권기획자: 가장 어려운 길을 택한 사람들
- 누구인가: 상권 전체의 브랜딩과 생태계 조율을 담당하는 기업
- 목표: 지역 내 다양한 주체들을 연결해 지속가능한 커뮤니티 형성
- 사례: 연희동 변화를 만들어낸 쿠움파트너스
- 현실적 어려움: 한국 비수도권에서는 아직 성공 사례가 거의 없음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꼭 필요하지만 상권기획자는 현재 딜레마에 빠져 있다. 이해관계자가 많은데(심지어 계속 늘어난다) 함께 보는 비전과 공감이 부족하고, 공공성을 추구해야 하지만 지속가능한 수익 구조는 없다. 현재는 정부 보조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며 지속가능성을 위한 정부의 정책은 아직 충분히 완성된 단계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요 오해와 편견: 왜 이런 오류가 생기는가
오해 1: "다 똑같은 로컬 기업 아닌가?"
앞서 본 세 유형은 목적과 평가 기준부터 다르다. 창의적 소상공인과 로컬 스타트업은 고객 중심의 비즈니스 성장에 집중하지만, 상권기획자는 공공성과 커뮤니티 조성이 더 중요하다. 이를 같은 방식으로 수행하거나 같은 잣대로 평가하면 모든 논의가 엇나간다.
오해 2: "투자나 지원 없이도 잘 되지 않았나?"
강릉의 테라로사, 부산의 모모스커피, 전주의 한복남이 초기에 투자 없이 성장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당시에는 받을 수 있는 투자나 지원이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죽음의 계곡을 넘어서 이익을 꾸준히 내고 있는 상황에서는 투자나 지원을 받을 필요가 없게 됐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을 사례로 시점에 대한 오류를 범하면 안 된다. 이들 기업이 죽음의 계곡을 넘는 동안, 수없이 많은 동료 기업들이 고비를 넘지 못하고 사라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기술 벤처도 마찬가지였다. 1997년 이전에는 기업들이 은행 대출과 연대보증으로 패가망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창업했다. IMF 때 많은 기업가들이 연대보증으로 무너졌고 재기하지 못했다. 그래서 김대중 정부부터 정부와 민간이 힘을 합쳐 투자 생태계를 만들고 팁스와 같은 지원 제도를 만들면서 기술 벤처들이 성장할 수 있었다.
이전 시기의 기업들이 아니라, 현재 고군분투하며 투자와 지원을 받고 고비를 넘으며 성장하고 있는 기업들로 눈길을 돌려야 한다. 올해 강한소상공인 대상을 받은 정읍의 반석산업은 크립톤의 투자를 받고 성장하고 있고, 부산의 럭키베이커리는 크립톤이 개인 출자자들을 모아 투자조합을 만들어 투자한 후 2호점을 내고 매출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오해 3: "이거 특정 정권 사업 아닌가?"
로컬 크리에이터 정책은 여러 정부에 걸쳐 지속되어 왔다:
- 박근혜 정부(2015-2016): 강원, 제주 창조경제혁신센터 중심 생태계 발아
- 문재인 정부(2017-2022): 전국적 확산과 지원 사업 체계화
- 윤석열 정부(2023~): 상권 사업으로 확장
- 이재명 정부(2025~ 전망): 김경수 위원장 지방시대위원회 중심 지속 확장
이는 수도권 집중화로 인한 지역 인구 감소와 소멸 위기, 창의적 세대로의 교체, K-콘텐츠로 인한 로컬 콘텐츠 기회라는 시대적 요구에 따른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과도기의 현실: 이상과 현실 사이
상권기획자들의 고군분투
각 지역에는 지역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10여 년을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 상권기획자들이 있다. 나는 이들을 만나면서 진심으로 존경하게 되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아직 제도적으로 지속가능성을 보장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들은 자신의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공공의 보조금 사업들을 활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웃 일본은 어떠한가? 우리보다 먼저 지역이 쇠퇴하고 공공 자금이 부족해졌다. 그로 인해 PPP(Public Private Partnership), BID(Business Improvement District), 고향납세 등 제도적 개혁을 통해 상권기획자, 상권관리회사가 지속가능한 수익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 별도의 글로 다루겠다).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 사회적 합의와 정부 정책의 완성도가 낮아서 이들은 자신의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서 보조금 사업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지방세 감소 추세로 볼 때 몇년 뒤면 일본과 같이 지역 상권 활성화를 위한 보조금이 거의 사라지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 사이에 모멘텀을 만들고 민관협력을 통해 지속가능성을 만들어내야 한다.
범주 혼란의 위험성
성공적인 상권기획자, 상권관리회사는 아직 탄생 전이기 때문에 창의적 소상공인이나 로컬 스타트업이 이 사업에 참여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때 범주의 오류를 범할 위험이 존재한다. 기업 성장과 이윤 추구가 미덕인 이들이라 할 지라도 상권기획 사업을 할 때는 지역의 다양성, 개방성, 연결성을 가진 건강한 커뮤니티 만들기가 최우선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한편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지역에서 상권기획자, 상권관리회사를 꾸준히 지향해온 기업들도 있다. 이들이 고객으로부터 창출하는 매출과 이익이 적다고 폄하하면 안된다. 그것은 아직은 부족한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들이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 지역을 위해 일해왔는지를 먼저 알기 위해 노력하고 존중해야 한다. 그리고 현장 밖에서 이들을 평가하고 재단하지 말고 이들의 지속가능성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도와야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10년 후를 내다보며: 생태계 완성의 미래를 만들자
로컬 크리에이터에 대한 정부 지원이 본격화된 지 5년, 투자가 활성화된 지는 2년에 불과하다. 생태계 변화의 결과는 최소 10년 이상에 걸쳐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확인되기 때문에 지금 성과를 정량적으로 평가하기에는 시기상조다. 지금은 의미 있는 성과도 있지만 시행착오도 있는 시기이며, 기대도 있지만 오해도 확산되고 있다.
우리는 이런 미래를 함께 상상하고 만들어가야 한다. 창의적 소상공인들은 지역의 다양성을 높이며 기성세대의 은퇴에 이어 청년 세대가 주도하는 지역을 열어낼 것이다. 또한 상권 기획자와 상권관리회사는 지역소멸을 해결하기 위한 PPP, BID, 고향사랑기부제(일본의 고향납세)의 성장과 함께 지속가능성을 확보해나갈 것이다. 또한, 앞으로 K-콘텐츠의 흐름을 타고 수많은 로컬 스타트업들이 엄청난 성장을 할 것이고, 몇 년 뒤면 이들 중 정부 지원과 민간 투자를 한 번도 받지 않은 기업들을 찾아보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10여년의 시간이 흐르면, 지역 원도심 상권의 건물주도 창의성을 갖춘 새로운 세대로 교체되며 창의적 소상공인과 함께 새로운 상권관리 거버넌스를 만들어갈 것이며, 1990년대 후반에 등장해 성장한 IT 기업들이 2010년대에 들어 그랬듯이 현재 투자 및 지원을 받아 성장하는 기업들이 성공한 후 후배 기업에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며 로컬 스타트업 생태계가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결론: 건강한 모니터링과 상호 존중이 필요한 때
로컬 크리에이터는 단순한 정책적 유행이 아니다. 지역 소멸 위기, 세대교체, K-콘텐츠 확산이라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나타난 응답이며, 새로운 글로벌 경쟁력의 원천이 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성급한 평가나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다. 창의적 소상공인, 로컬 스타트업, 상권기획자라는 세 가지 유형의 서로 다른 목표와 성격을 이해하고, 각각에 맞는 지원과 평가가 필요하다. 또한, 이들의 시행착오, 즉 '실패를 통한 성장'에 대해 좀 더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이들의 사업 수행에 있어서 잘못된 부분은 지적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진정으로 로컬 생태계의 발전을 원한다면 이들 기업과 창업자의 존재 가치 자체를 부정하거나 폄하하며 공격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그런 표현들은 서로간의 오해와 편견, 갈등을 키울 뿐 생태계 성장에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특히 변화의 과도기인 앞으로 10년은 시행착오와 논쟁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그것을 성급히 일반화하기보다 건강한 모니터링과 상호 존중이 필요하다. 상대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할 때만이, 어떤 것이 바람직한 실천인지에 대한 격렬하면서도 발전적인 긍정적 토론이 가능할 것이다.
결국 로컬 크리에이터 생태계의 성패는 각 주체들의 창의성과 진정성, 그리고 이를 존중하고 지지하는 사회적 태도에 달려 있다. 로컬이 곧 새로운 글로벌 경쟁력의 원천이 되는 미래를 위해, 우리는 이 생태계가 가진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제도적, 사회적 기반을 계속 다져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