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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 - 도시는 어떻게 사랑받는가>를 읽고

10년의 시간 동안 지역이 어떻게 창조적인 도시로 변화할 수 있을까. 2025년 현재 성수동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창의적인 동네다. 생산과 소비가 어우러지고 다양한 산업이 공존하는 곳이다.

이 글은 2014년부터 성수동을 이끌어온 정원오 성동구청장이 쓴  <성수동 - 도시는 어떻게 사랑받는가>(2025.11 출간)를 통해, 지방도시가 창조적 생태계를 만들 때 직면하는 근본적 차이와 가능성을 탐색한다. 특히 나의 제주에서의 7년 생태계 조성과, 크립톤에 합류해서 전주를 비롯한 지역창업생태계 조성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성수동 사례가 지방도시에 주는 시사점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성수동, 내게는 제주와의 평행 우주였다

성수동의 생태계에 나는 직접 참여하거나 기여한 바가 없다. 하지만 그 생태계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한 핵심 인물들이 같은 시기에 시작된 제주창업생태계에도 연결되었기 때문에, 내게는 평행 우주처럼 계속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도시일 수밖에 없다.

다음 창업자인 이재웅님, 메타기획컨설팅 최도인 본부장, MYSC 김정태 대표, 소풍벤처스 한상엽 대표와 임준우 파트너, 브리크 정지연 대표는 직접적으로 제주와 성수의 생태계 성장의 시기에 동시에 깊이 연결된 분들이었다. 성수 생태계에 핵심 역할을 한 루트임팩트 허재형 대표, 임팩트얼라이언스 박정웅 팀장은 내가 제주에서 7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서로의 경험과 지식을 나누면서 이해가 깊어질 수 있었다.

그래서 2015년부터 성수동의 변화를 담은 이 책은 내가 머물지도 실천하지도 않은 도시임에도 의미 있게 다가온다. 지역 변화관리에 대한 내 경험과 생각과 일맥상통하는 점을 확인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성수동과 다른 도시(특히 지방도시들)의 다른 점이 떠오르며 고민이 깊어지기도 하고, 사회를 혁신하는 큰 흐름과 뛰어난 혁신가들이 힘을 합치며 장기간의 변화를 만든 것을 보며 더 큰 희망을 가지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성수동 성공의 세 가지 요인

성수동은 어떻게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이 책을 읽고 나서 생각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보았다.

첫째, 교통 입지가 좋았고 건물과 보행 환경 등이 유리했다.

서울숲이 조성되어 산책하기 좋게 되었고, 지하철역이 지나가고 대학들이 인접해 있었다. 또한 외곽으로 빠져나간 공장들의 건물들은 창의성이 발현되기 좋은 공간들이었다.

둘째, 다양한 영역의 커뮤니티 리더들이 이곳에 모여들었다.

그 결과 도시의 미래상이 그려지고 이에 공감하는 창의적인 인재와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모였다. 자본을 가진 이들과 재능을 가진 이들이 균형 있게 모여들고 커뮤니티를 이루어간 것이 성공적인 요인이었다.

셋째, 공공이 복잡적응계의 도시 변화 관리자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었다.

새롭게 유입된 창의적인 인재, 기업들의 활동과 생각을 들으며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지역 주민, 건물주들에게 지속가능한 이익과 성장을 위한 설득을 통해 정책을 마련해간 것이다.

구체적으로 획일적인 기존의 도시 성장 방식이 아닌 성수만의 지속가능한 성장 방식을 설득하고 붉은 벽돌 조례, 젠트리피케이션 조례 등을 만들어갔다. 이는 행정의 새로운 일하는 방식을 보여주었는데, 개발도상국 시절의 마스터플랜과 하향식 방식이 아니라 상향식으로 현장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변화를 해석하고 행정의 역할을 탐색하고 실행하는 선진국 방식이었다.

나는 여기서 행정이 '작가적 시선'으로 생태계를 바라보며 일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행정이 스스로 주인공이 되기보다는 수많은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서사를 읽어내고 정리하는 역할을 했다. 도시에는 수많은 주체들의 다양한 서사가 공존하지만, 행정의 서사가 이렇게 쓰여질 수 있고 그것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발견이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이 이 책에 이런 관점과 내용을 담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시선 때문이다. 이 책의 미덕은 성수동과 인연을 맺은 다양한 주체들과 그들이 얽혀 나가며 만들어간 생태계의 과정을 제대로 아카이브한 것에 있다.

지방도시가 배워야 할 것들

이 같은 성수동의 생태계 조성 사례를 통해 창의적인 인재와 기업이 모여들고 성장하기를 바라는 지방 도시들이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일까?

첫째, 입지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입지에 있어서 성수동과 동일한 곳은 있을 수 없다. 이미 전국의 인재와 기업이 모여들고 교류하는 서울이고 그곳에서 입지가 좋았던 성수동이었기에 가질 수 있는 기회였다. 시기도 좋았다. 성수동은 대한민국과 서울이 글로벌 도시로 도약하는 시기에 모멘텀을 살릴 수 있었다.

지방도시는 서울이 아니다. 성수동은 서울, 경기 등 대한민국의 절반의 인구들이 당일 왕복이 가능한 생활권의 입지다. 따라서 지방도시는 다른 관점에서 잠재력을 봐야 한다.

성수동처럼 규모 있는 창의적 인재들의 유동인구를 만들 수 있는 지방도시 동네는 없다. 하지만 지역의 문화 역사 자원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차별화된 창의 네트워크를 만들어낼 수 있는 동네들은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지방도시 중 KTX 역이 가까운 원도심에 주목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수도권과의 접근성이 좋고, 그 지역만의 문화 역사 자원이 있기 때문이다. 거점 도시 원도심들은 원래 인근 중소도시의 인재와 기업들의 허브였다가 그 기능을 상실한 상태다. 하지만, 다시 허브 기능을 되살릴 수 있는 입지 조건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말이다.

둘째, 커뮤니티 리더의 존재와 유입 가능성이 핵심이다.

이 같은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주체가 있는가? 그리고 다양한 영역의 커뮤니티 리더들이 그 지역에 존재하는지, 또 앞으로 그런 리더들이 그 지역으로 모여들 수 있는지를 보는 것은 성수동과 똑같이 중요하다. 아무리 입지가 좋더라도 그런 커뮤니티 리더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도시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내가 전주 원도심의 가능성을 높게 보는 이유는 다양한 콘텐츠들이 모여든 곳인데다가, 정수경 대표(즐거운도시연구소), 이하늘 대표(무명씨네협동조합) 등 많은 분들이 10년 이상 묵묵히 자신의 영역에서 커뮤니티 리더로 활동을 해왔고, 금성당, 평화와평화, 워커비, 바늘소녀공작소와 같은 창의적인 기업들이 자리잡고 있고, 최근에는 새로운 인재들이 유입되면서 다양성이 높아지고 더 큰 창의적 네트워크와 창조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다른 동네로 내가 주목하고 있는 대전의 어은동, 궁동도 마찬가지다. KAIST와 충남대 사이에 위치한 이 동네에 창업가, 연구자, 공공 등이 어우러지며 변화의 기운이 커져가고 있다. 성수동의 2015년에 카우앤독, 루트임팩트 등이 있었고 이후에 MYSC, 무신사 등 다양한 혁신 주체들이 들어올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셋째, 행정의 혁신 역량이 필수적이다.

성동구와 달리 지방 도시의 행정은 아직까지도 개발도상국 시절의 성장 방식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민간의 커뮤니티 리더들이 모여들고 혁신을 만들어가더라도 행정이 과거의 방식에 머문다면 그 씨앗은 더 커나가기 어려울 것이다.

도시가 복잡적응계인 것을 이해하고 도시에서 일어나는 혁신을 이해하고 학습하며 지역의 기존 주민, 상인, 건물주들과 새로운 혁신 커뮤니티 사이에서 공동의 이익을 제안하고 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공공 혁신 역량이 필수적이다.

앞서 언급한 행정의 '작가적 시선'이 여기서 다시 중요해진다. 행정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를 읽어내고 다양한 주체들의 서사가 함께 쓰여질 수 있도록 촉진하는 역할 말이다.

함께 서사를 만드는 것

도시의 변화는 한 주체만의 노력으로 되지 않는다. 성수동은 어떻게 사랑받게 되었을까? 이 시기에 성수동에 모인 매력적인 사람들이 서로를 사랑하고 함께 서사를 만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결국 커뮤니티 자본이다.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고, 그 연결이 신뢰가 되고, 그 신뢰가 협력이 되고, 그 협력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 성수동이 그랬고, 제주가 그랬고, 이제 전주와 대전을 비롯한 지방도시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그렇게 될 수 있다.


성수동 생태계와의 인연의 기록

이런 생각의 배경에는 내가 직접 경험한 성수동 생태계와의 만남들이 있다. 2015년부터 현재까지 그 인연은 이어지고 확장되며 평행우주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1. 2015년 봄 - 다음이 카카오에 합병된 다음 해, 제주와 성수에서

지금부터 10년 전, 2015년은 내게도 큰 변화이자 새로운 시작이었던 해이다. 나는 그해 4월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센터장으로 임명되고 6월에 센터를 개소했다. 바로 전 해에 다음이 카카오에 합병되었는데 그 아쉬움을 나는 제주 창업생태계 조성을 통해 풀어보고자 했다.

다음 창업자였던 이재웅님은 제주와 서울 양쪽에 거처를 두고 오가며 살고 있었는데, 2014년 자신이 세운 회사를 떠난 후 성수동에 카우앤독이라는 코워킹스페이스를 만들었다. 나는 2015년 3월과 5월 그곳에 놀러가서 큰 에너지를 느꼈다. 아직 성수동이 공장 지대와 수제 구두 거리가 중심이었던 때였다.

[플리마켓 사진 - 2015.5.31 성수동 카우앤독]

2. 2019년 10월 11일

2019년 제1회 로컬크리에이터 페스타가 성수동 에스팩토리에서 열렸다. 성수동의 공장을 리모델링해서 창작자들의 공간으로 2016년에 만들어진 이 공간에서 전국의 로컬크리에이터들이 최초로 모여서 열린 행사였다.

전유성, 홍석천, 임홍택(90년생이 온다 저자), 유주형(카페 어니언 대표)과 같은 흐름과, 박세상(한복남 대표), 김하원(해녀의부엌 대표), 김준태, 박은영(도시여행자), 고선영(재주상회 대표), 홍동우, 박명호(공장공장), 김지우(더웨이브컴퍼니 대표), 조남식(충주시 공무원), 김태관(KBC광주방송 PD) 등을 한 무대에 올리며 새로운 현상에 대해 의미를 읽어내고 알리는 자리였다.

그동안 서울, 강원, 제주를 중심으로 태동하던 로컬크리에이터 생태계는 이 행사를 기점으로 전국적인 현상으로 확산되었다. 로컬 창업생태계에 지금 활동하고 있는 많은 분들이 이 행사가 기점이 되었다고 한다. 성수동의 건축,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창업자인 브리크 정지연 대표도 이 행사에 와서 로컬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이 행사 총괄 기획자이면서 같은 달에 첫 책 <밀레니얼의 반격 - 라이프스타일 혁신가들이 몰려온다>(2019)를 출간했다. 이 행사 무대에 오른 많은 분들이 이 책에 등장하는 분들이었다.

[제1회 로컬크리에이터 페스타 사진 - 2019.10.11 성수동 에스팩토리]

3. 2022년 9월 27일

성수동의 생태계는 루트임팩트헤이그라운드가 민간의 생태계 조성자 역할을 해냈기에 가능했다. 나는 제주에서 2022년 5월, 7년 1개월의 임기를 마치고 카카오로 복귀한 후 안식 휴가를 쓰고 있었다.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나고 지역을 다니고 강연을 하면서 그동안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내가 특히 관심을 가졌던 것은 성수동의 커뮤니티와 전북 남원의 지리산포럼의 커뮤니티였는데, 9월 27일에 루트임팩트 허재형 대표가 제주에 방문하는 것을 계기로 만나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 만났는데도 생각이 너무나도 비슷하고 실천의 방향도 비슷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루트임팩트 허재형 대표와 함께 - 2022.9.27 스테이 위드 커피 @ 제주]

4. 계속되는 인연들

제주창업생태계의 리서치 파트너였던 메타기획컨설팅 최도인 본부장은 크리에이티브X성수의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나는 헤이그라운드에 오랜 시간 입주해있던 브리크에 자문위원을 하면서 브리크가 로컬 콘텐츠들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지켜봤다. 성수동의 소셜임팩트 생태계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임팩트얼라이언스의 박정웅 팀장은 나의 책 <커뮤니티 자본론 - 나의 제주에서 7년간 창업생태계 실천커뮤니티를 만들어간 이야기>(2023 출간)으로부터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의미와 방법론에 대해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하며 2024 사회적가치페스타(SOVAC)에 발표자로 초대하기도 했다. 

[강연 ‘지역의 새로운 성장 경로를 그리다’ - 2024.9.12 코엑스]

이와 같이 성수동의 생태계에 나는 직접 참여한 적이 없지만, 이곳을 만들어간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내게는 이미 특별한 곳이다. 이 책이 내게도 특별히 와 닿았던 이유다.


2025.12.31 桓

전정환 2025년 12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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