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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 거버넌스는 왜 중요한가

2026년 7월 30일 작성자
전정환

우리나라의 많은 비영리 기관은 성과에 비해 거버넌스가 취약했다. 그동안 이것이 크게 문제되지 않았던 것은 기관을 세운 주체가 곧 기관을 지켜주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립 세대는 물러나고 정책 환경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최근에는 성과를 인정받던 기관조차 정책과 리더십의 변화 앞에서 존립과 정체성이 흔들린다. 이제는 좋은 비영리를 만드는 것을 넘어, 그것을 지속시키는 거버넌스를 논의할 때가 되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정부나 대기업이 설립한 비영리 기관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창업주 가족이 이끄는 대기업 재단도 있었고, 시민사회의 카리스마 있는 리더가 만든 비영리 기관도 있었다. 창조경제혁신센터, 아산나눔재단, 희망제작소가 각각의 사례이며, 설립 배경과 운영 방식은 다르지만 모두 우리 사회에서 유의미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세 유형에는 공통점이 있다. 조직의 방향을 결정하는 최종 권한이 정부, 출연 기업, 또는 창립자 개인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비영리 기관에는 주식회사의 주주와 같은 소유자가 없다. 조직이 만들어낸 성과를 가져갈 주인이 없고, 따라서 주인의 이해관계가 조직을 규율해주지도 않는다. 영리기업에서 소유 구조가 하던 역할을 비영리에서는 거버넌스가 대신해야 하는 이유다. 비영리 기관은 특정 소유주나 주주의 이익이 아니라 공적인 미션을 중심으로 존재한다. 누군가는 자금을 대고, 누군가는 직원이 되며, 누군가는 파트너나 참여자로 헌신한다. 이들의 유·무형 기여와 오랫동안 축적된 관계와 경험이 모여 비영리는 지속가능한 생명력을 얻는다.

미션은 '조직의 존재 이유'이고, 비전은 '조직이 추구하는 미래상'이다. 미션과 핵심가치는 쉽게 바뀌어서는 안 되지만, 전략과 사업은 환경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조정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꿀 것인지, 그리고 이를 결정할 권한과 절차가 명확한가이다.

비영리 기관의 이사회는 기부자, 임직원, 파트너, 참여자, 수혜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관점을 의사결정에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조직 전체의 미션에 책임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미션에 대한 헌신과 진정성, 필요한 전문성, 관점과 경험의 다양성이 필수적이다. 전문성과 다양성은 필연적으로 이견을 낳는다. 그러나 미션이라는 공통의 기준을 가진 사람들이 나누는 이견은 더 나은 결론에 이르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된다. 반대로 미션에 대한 진정성 있는 공감과 헌신이 없다면 이견은 기준점 없는 대립과 갈등으로 끝나기 쉽다.

비영리 기관의 이사회는 최종 의사결정 기구다. 그러나 그 역할은 위에서 결정을 내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책임은 맡은 역할을 수행한다는 Responsibility만이 아니다. Accountability, 즉 책무성이 핵심이다.

책무성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설명과 평가다.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를 미션을 기준으로, 이해관계자 각자의 관점과 언어로 번역해 설명하고 그 결과를 평가받는 것이다. 내 입장에서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하나는 시정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 누군가 물러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결정을 실제로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

수년 동안 미션을 충실히 수행해온 기관이라도 거버넌스가 취약하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이미 무너진 곳, 반복해서 흔들려온 곳, 아직 버티고 있는 곳. 세 기관의 처지는 다르지만 취약한 지점은 같은 자리에 있다.

영도문화도시센터는 2020년 첫 연차 평가에서 3등급을 받았지만 이후 2년 연속 전국 최우수 문화도시로 선정되었다. 많은 영도구민과 지역 주체의 지지를 받았고 영도 밖에서도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었다. 센터장과 직원들이 미션을 중심으로 헌신했고 다양한 주체가 이에 호응하며 참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문체부 중심의 5년 사업이 끝나고 지역 주도의 지속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 시점에 사업은 종료되었다. 영도구청은 재정 여건을 이유로 들었다. 영도구의 재정자립도는 10%에 미치지 못하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사업은 처음부터 국비 50%, 시비와 구비 각 25%로 설계되어 있었다. 5년 뒤에 재정 절벽이 온다는 것은 시작할 때부터 예정된 사실이었다.

종료를 앞두고 임직원과 파트너, 참여자들이 '영도문화도시센터 출구 전략 오픈 포럼'을 열었다.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 여러 해 동안 축적된 관계와 경험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 함께 논의하려는 자리였다. 그러나 최종 권한을 가진 사람은 다른 일정을 이유로 오지 않았다. 참석은 그의 선택이었지 의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영도의 문제는 5년 뒤 예산이 없다는 것이 아니었다. 그 이야기를 함께 들어야 할 사람이 듣지 않아도 되는 구조였다는 것이다.

창조경제혁신센터도 거버넌스에 취약한 구조다. 나 역시 7년간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를 운영하며 이 구조의 가능성과 한계를 함께 경험했다. 법적으로는 독립된 비영리재단이지만 재원과 사업 구조상 정부 정책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이어져온 것은 센터장과 임직원, 지역 창업생태계 참여자들이 현장을 탄탄하게 받쳐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힘이지 구조의 힘이 아니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개선의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제주센터는 엔젤투자협회 고영하 회장을 선임직 이사로 모셨다. 당시 제주도 경제산업국장은 익숙하고 안전한 기업 보조금 중심의 접근을 선호했는데, 이사회에서 고 회장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했고 이사들이 찬반 토론을 통해 센터의 시드머니 투자 사업이 의결될 수 있었다. 이후에 이 사업이 성과를 내자 경제산업국장 본인이 시드머니 투자의 적극적인 지지자, 홍보자가 되었다. 이견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결정이었다. 이사 한 사람의 구성 변화가 기관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바꾼 것이다.

디캠프는 2013년 개관 당시 초대 센터장과 임직원들이 미션을 중심으로 탄탄한 초석을 놓았다. 후임 센터장들과 직원들은 그 미션을 이어가며 프로그램을 고도화했다. 디캠프에 참여한 창업자와 투자사도 단순한 수혜자가 아니었다. 그들 역시 디캠프의 미션을 함께 실현해온 이해관계자였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의 성공적인 궤적에도 거버넌스의 한계는 있었다. 이사회가 디캠프의 성장과 함께 비영리 거버넌스에 맞게 발전하지 못한 것이다. 재단 이사회는 은행연합회장이 비상임 이사장을 겸임하고 금융권 인사들이 주로 참여하는 구조다. 이사진은 원소속 기관의 인사 변화와 함께 교체될 가능성이 크다. 적어도 현재 공개된 이사회 구성만 놓고 보면, 디캠프의 프로그램과 생태계를 함께 만들어온 창업자·투자자·생태계 전문가의 관점이 이사회에 구조적으로 반영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사회가 발전적인 역할을 하려면 전체 이사의 절반가량은 창업자·투자자·생태계 전문가 등 현장 경험을 갖춘 인사로 구성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약점이 초기 10여 년 동안 크게 드러나지 않았던 것은, 이사회가 현장에서 한 발 물러서 있었고 센터장과 임직원이 창업생태계와 호흡하며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사람과 관행에 의존한 균형이었을 뿐 구조가 만들어낸 안정은 아니었다. 창업생태계 현장에 대한 경험과 조직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승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사회가 다른 방향을 제시한다면, 오래 축적된 미션과 방향이 단기간에 바뀔 수 있는 구조였다.

세 기관은 설립 배경과 운영 방식이 서로 다르다. 그러나 공통된 문제가 있다. 조직의 미션과 성과를 만들어온 사람들과 최종적인 거버넌스 권한을 가진 주체 사이에 구조적인 거리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임직원과 파트너, 참여자들이 오랜 시간 관계와 경험을 축적하더라도, 이들에게는 그것을 지키거나 중요한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적 권한이 없다.

이제 우리나라도 비영리 기관의 설립 주체나 재원 제공자가 거버넌스를 사실상 독점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사회에는 조직의 역사와 현장을 이해하는 사람, 필요한 전문성을 가진 사람, 서로 다른 이해관계자의 관점을 가져오는 사람이 균형 있게 참여해야 한다. 기관의 성격에 따라 다르겠지만 당연직 이사의 비중에는 상한을 두고 다양성과 전문성을 보강해야 한다. 이사의 임기는 한꺼번에 교체되지 않도록 시차를 두어 설계하고, 미션과 비전의 중대한 변경에는 통상의 의결보다 엄격한 요건을 적용해야 한다. 재원 구조가 바뀌는 전환기에는 그 논의에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절차를 미리 만들어두어야 한다. 이사의 선임 절차, 경영진에 대한 견제와 지원, 주요 의사결정의 설명과 평가 절차도 제도화해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이해관계자가 모든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조직의 미션과 자산을 함께 만들어온 사람들의 관점이 의사결정 과정에 반영되고, 최종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그들에게 결정의 근거와 결과를 설명하며, 잘못된 결정은 바로잡을 수 있는 구조를 갖추는 것이다.

한국의 각 분야 주체들은 이미 뛰어난 역량을 가지고 있다. 비영리 미션의 구심점이 있으면 그 역량들이 정부 실패와 시장 실패가 일어나는 영역을 메우며 선순환의 생태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 좋은 비영리는 한 명의 뛰어난 리더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리더가 바뀌고 재원을 제공하는 주체가 달라지더라도 미션과 신뢰, 관계와 경험이 이어질 수 있는 구조가 좋은 비영리를 만든다. 이제 한국의 비영리도 성과를 만드는 단계를 넘어, 그 성과와 미션을 지켜낼 거버넌스를 설계해야 한다.

[참고] 첨부한 장표들은 2024.7.2 <영도문화도시 출구전략 오픈 포럼>에서 '지속가능한 거버넌스의 항해'를 주제로 내가 발표한 내용의 일부다.

전정환 2026년 7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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