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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민주주의는 지속될 수 있는가? – 《결정적 선거들》을 읽으며

2026년 10월 31일 작성자
전정환

업무가 많았던 한 주에는 눈과 정신이 피로하고, 주말에 책을 손에 잡아도 잘 읽히지 않는다. 그런데 어떤 책은 그런 때에도 읽는 재미에 빠져들고, 점점 눈과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까지 든다. 내게는 조귀동 작가의 책들이 그렇다.

책장을 넘길수록 내가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것들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근현대사의 맥락 속에서 겹겹이 쌓여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역사적 사실들을 꿰어서 나 자신의 맥락을 구성해볼 수 있는 자유를 느끼게 된다. 답을 찾을 수는 없지만, 질문으로 사실들을 이리저리 나름 꿰어가면서 읽을 수 있다고 할까.

조귀동 작가의 신간 《결정적 선거들》에서 다룬 전 세계 15개 국가의 18개 선거 중 6개 선거까지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어본다.

첫째, 민주주의는 권위주의보다 미래에도 우월할까?

개발도상국이던 한국은 권위주의 체제 아래에서 산업화를 이루어냈지만,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성장을 이어왔다. 그런데 중국이 권위주의 체제 아래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루고,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이 권위주의화되거나 경제·사회적으로 혼란을 겪는 과정을 보거나, 한국의 민주주의가 진영 대립이나 정치적 나눠주기식 지역 개발로 가는 모습을 보면서 민주주의가 앞으로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서는 다소간의 위안을 얻게 된다. 과거의 결정적 선거의 순간들도 항상 혼란스럽고 복잡한 힘들이 부딪히고 갈등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흐름이 언제나 더 나은 방향으로 향했던 것은 아니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는지는 여전히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냥 이 책을 읽고 있는 순간에는 위안이 된다.

둘째, 역사의 방향을 바꾸는 힘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저자가 수많은 선거들 가운데 왜 이 책의 18개 선거를 골랐는지 궁금해하면서 읽게 된다. 1933년 뉴질랜드 재보선에서는 뉴질랜드 최초의 여성 국회의원이 탄생했다. 1958년 일본 총선은 자민당 창당 이후 처음 치러진 총선으로, 이후 오랫동안 이어질 자민당 중심의 정치 질서를 공고히 했다. 1980년 미국 대선은 신자유주의적 정책 전환을 본격화한 계기가 되었다.

1994년 남아공 최초의 전 인종 참여 선거에서 승리한 넬슨 만델라가 어떻게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인종 간 통합의 길을 열었는지, 2019년 우크라이나 대선에서 젤렌스키의 당선은 어떤 역사적 흐름 속에서 이루어졌으며 이후 러시아의 침공으로 이어진 국제정세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 등도 읽을 수 있다.

이런 결정적 선거의 순간마다 어떤 힘들이 서로 마주치고 갈등하고 연합했으며, 그 이후 어떤 새로운 힘들이 탄생했는지 보게 된다.

그러면서 지금 이 순간에는 어떤 강한 힘들이 서로 만나고 충돌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충돌 속에서 어떤 새로운 연합이 탄생하고 또 다른 길을 만들어낼 것인지 궁금해진다.

새롭게 탄생하는 힘은 시대를 바꾸는 정신을 품고 있지만, 이미 그 안에 모순도 함께 안고 있다. 그 순간에는 모순이 있어도 혁신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모순은 구태가 될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은 흐른다'는 말처럼 여러 지류들이 모이고, 그것들이 합쳐져 하나의 물길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읽는 재미가 크다.

셋째, 무너진 민주주의는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이 책의 4부 제목은 '무너지는 질서 - 다수의 이름으로'이다. 최근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지 않나 하는 위기감이 든다. 하지만 4부에는 최근의 사례만 있는 것이 아니다. 히틀러가 총리에 오른 직후 치러져 나치 독재의 길을 연 1933년 독일 총선도 담겨 있다.

이 선거는 민주주의가 어떻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큰 경고다. 그 이후 나치 독재는 2차 세계대전이라는 참극으로 이어졌지만, 전쟁이 끝난 뒤 서독에서는 민주주의가 다시 세워졌다. 민주주의의 역사는 위기와 붕괴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회복의 역사이기도 한 셈이다. 그렇다고 민주주의가 앞으로도 반드시 회복될 것이라고 낙관할 수는 없다.


그래서 어쩌자는 것인가?

이 책은 지금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한다는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역사 속의 결정적 선거들이 품고 있는 다층적인 맥락들을 읽어나가면서 내가 당연하게 여겨온 생각들이 얼마나 단편적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맹목적인 낙관에도, 섣부른 절망에도 빠지지 않고 그 사이에서 생각하게 된다. 적어도 나의 무지와 편견에서 조금씩 빠져나오고, 그 덕분에 조금은 더 지혜로워지는 것 같다. 독서의 즐거움을 누리고 무지를 깨달음으로써 조금 더 나은 시민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나름 의미가 있지 않을까.




분류 Essay
전정환 2026년 10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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